[한경에세이] 리더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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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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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웠다. 호통의 크기에 비해 책임지는 사람은 적고, 열심히 일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쑥덕대는 그림자는 많았다. 주눅 든 어깨가 늘어나는 만큼 조직의 활력은 빠르게 소진됐다. 주인이 사라질 때, 일은 쉽게 방향을 잃고 휘청댔다. 삼십 대 초반, 타들어 가는 중동 사막의 모래언덕 위에서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변화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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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훌륭한 리더십은 필수다. 공통의 비전을 제시하는 점은 같지만, 리더의 유형은 매우 상이하다. 권력을 휘둘러 선도하거나, 열린 소통을 앞세우기도 한다. 각계를 호령하는 리더의 수만큼 다양한 지론이 설파됐고, 수평적 관계가 확산하면서 최근에는 ‘섬기는 리더십’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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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리더는 사라져야 한다. 오랫동안 크고 작은 조직을 경영하며 얻은 작은 결론이다. ‘이끄는 자’로서 리더의 공백은 오히려 분산된 권한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공간을 연다. 모든 층위가 충분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해당 부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구름 위의 리더가 아니라 개별 프로젝트의 관리자, 업무의 담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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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면 사람은 일의 뒤편으로 숨는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은 무모하더라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누군가 분명히 ‘뒷일을 감당해 줄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다. 신뢰하고 또 신뢰해야 한다. 엉뚱한 산에 오른 걸 스스로 깨우쳐야 다음 봉우리로 올라가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체력을 안배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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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한을 내려놓은 리더의 가치는 보이지 않는 지점에 놓인다. 신뢰의 결과를 겸허히 인정하고 홀로 책임을 감당하는 것, 이끄는 자가 아닌 진짜 리더의 외로운 책무다. 책임지는 리더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천방지축을 돌려 세우고, 존중과 존경, 의리와 희생의 가치를 회복시킨다. 이기적 개인들의 건조한  네트워크를 따스하고 지속가능한 연대의 기틀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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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와 소통의 모습에서 시대의 진상은 확인된다. 개발연대를 이끈 수직적 위계와 상명하복의 윤리는 크게 약화됐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서서히 이뤄진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직장은 물론 가정에서도 열린 소통에 터 잡은 수평적 관계가 표준적 당위로 요구된다. 변화한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십은 리더를 없애는 것, 혹은 모두를 리더로 세우는 것이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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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아테네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만을 바랐던 소크라테스는 운명의 독배를 피하지 않았다. 구원하려던 이들에게 버림받고 스스로를 희생한 골고다의 유대인 청년은 이천 년 인류의 리더로 존경받고 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으니 용서해 달라고 그는 간구했다. 삼십 년 전, 리더를 그만두고 오직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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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0021211931​